부처님오신날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 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되어 있는 불탄일(佛誕日) 또는 석탄일(釋誕日)을 쉽게 풀이하여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불탄일 봉축위원회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한 결과 석가모니가 탄생하신 것은 곧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란 뜻을 지니며 부처님의 뜻이 강조되고, 자비광명이 도래한 날이란 함축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다. 이에 봉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하게 되니 한국불교의 모든 종단이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어 오늘날은 석가탄일인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통칭하게 되었다.
석가모니는 집을 떠나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이름의 왕자였어요. 나중에 얻은 이름인 석가모니는 '석가 족의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왕자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기원전 563년에 인도와 네팔의 국경 지역에 있던 조그만 왕국에서 아버지 슈도다나와 어머니 마야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싯다르타가 태어난 지 7일 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요.
깨달음의 길이 열린 '부처님오신날'
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서 탄생하셨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걸음을 걷고 난 뒤, 두 손을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사자후를 외쳤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외침은 장차 고통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선언, 즉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눈먼 중생들을 위하여 걸림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선언은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6년 간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다섯 비구를 상대로 법을 설함으로 시작하였고, 이후 45년 동안 인도 전역을 다니면서 중생들을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깨달은 사람을 뜻합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네팔의 룸비니
싯다르타는 왕자였기 때문에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런 것보다는 왜 힘센 동물이 힘없는 동물을 잡아먹고, 왜 어떤 사람은 잘 먹고 잘사는데 어떤 사람은 못 먹고 못사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어요.
싯다르타의 사촌 형제 중에 데바닷타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싯다르타와는 달리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곤 했어요. 동물들을 죽이는 사냥도 좋아했지요. 어느 날은 활로 꿩을 쏘아 맞혔는데, 그 꿩이 싯다르타가 놀던 정원 안으로 떨어졌어요. 싯다르타는 그 꿩을 가엾게 여겨서, 데바닷타 몰래 치료를 해서 날려 보냈어요.
세상의 고통에 눈을 뜨다
싯타르타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라훌라라는 아기도 낳았어요. 하지만 싯다르타는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계속 모른 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부와 궁궐 밖에 나갔다가 병이 들어서 괴로워하는 사람, 늙어서 기운이 없는 사람, 죽어서 화장터로 옮겨지는 사람을 보았어요. 그리고 걸식 생활을 하면서 진리를 찾는 수행자들도 보았지요. 이 일을 통해 싯다르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는 더 이상 편안한 궁궐 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지요.
고통스러운 수행
고통스러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 한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수행(성인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도를 닦는데 힘쓰는 것)을 떠날 결심을 했어요. 아름다운 부인과 귀여운 아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깨달음의 길을 찾는 것이 더 마땅하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싯다르타는 숲속으로 들어가, 유명한 스승들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을 시작했어요. 진실한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고통스러운 세상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지요.
하루에 쌀 한 톨만을 먹으면서까지 고통스러운 수행을 하던 싯다르타는 등뼈와 배가 서로 맞닿을 정도로 야위었어요. 그렇지만 그가 찾고자 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어요.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다
싯다르타는 고행을 멈추고 한 마을의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에 잠겼어요.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요. 오랫동안 명상을 계속한 싯다르타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어요. 깨달은 사람, 곧 부처가 된 것이지요. 싯다르타가 명상을 했던 이 나무가 바로 '보리수'랍니다. 보리수는 '깨달음의 나무'라는 뜻이에요.
마음의 평화를 찾다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푸는 석가모니
싯다르타가 명상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이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무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는 것이지요.
그 후 45년 간 인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베푼 싯다르타는 '석가모니'라는 존칭을 얻었어요. 그리고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죽음을 '열반'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열반은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은 상태를 말한답니다.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단순한 개념이나 관념이 아니며 부처님이 체험을 통하여 증득한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신 그 가르침 또한 배워서 알아야 하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그 가르침을 믿고, 그에 따라 실천 수행해야 합니다.
깊고 참된 진리를 깨달은 이는 마침내 생사의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불교 최고의 이상인 열반을 성취합니다.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사바세계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분이 나신 곳은 호화찬란한 궁궐이 아니라 길가의 동산 위입니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가신 우리 스승의 탄생은 그 자체가 중생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사람의 표현인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2천만 불자들은 부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것은 물론 "참 나"를 찾겠다는 발심을 내고
부처님의 중생구제원력을 세워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생의 병의 종류에 맞춰 약을 주셨던 부처님과 같이
우리 불자들은 이 시대의 중생의 고통에 맞게 처방을 해 주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부격차와 정신적 혼돈,
그리고 분단이라는 굴레 속에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갈등과 이념의 대립으로 고귀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 또한
우리 불자가 이 시대에 처방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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