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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파도의 유튜브

동양파도의 바다여행(문무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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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 일츨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대왕암은 육지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바다에 있다. 큰 바위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앙에 약간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대석을 이동하여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 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삼국유사에서 만파식적에 대한 많은 내용이 나옵니다. 신라 제 31대 왕인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와 가까운 곳에 感恩寺(감은사)를 지었는데, 신문왕 2년에 해관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해서 점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수성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利見臺(이견대)에 가서 보니 바다 위에 떠오른 거북 머리 같은 섬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그 대나무는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대나무였다고 합니다. 폭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신문왕이 그 산에 들어가는데, 용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것이라 해서 대나무를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게 됩니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신문왕이 대나무의 이치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이에 용은 “비유하건데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오...또한 대왕은 이 聲音(성음)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고 사라집니다. 신문왕이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만파식적을 한 번 불면 몰려왔던 적군은 물러가고 앓던 병도 전부 나았으며 홍수, 가뭄이 찾아와도 한번에 해결이 되는 최고의 물건으로 신라의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특히 일본의 침략을 막는 효능이 있어서 일본의 사신이 1천 냥을 내고 한번 보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youtu.be/BjuBvAb7n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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